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큐 전철 (문단 편집) === 다이토큐(大東急) 시대 === ||<:>[[파일:다이도큐 로고.svg|width=100]][br]당시 로고|| [[태평양 전쟁]]이 한창이던 [[1942년]], 일본 정부는 육상 교통을 담당하는 기업을 정리해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육상교통사업조정법을 제정했다. 법이 제정되자 제일 먼저 사장 [[고토 케이타]]가 산하에 있던 [[케이큐 전철|케이힌 급행전철]]과 [[오다큐 전철]]을 도큐에 흡수합병한다. 어떻게 한 사람이 3개의 철도 회사를 가지고 있었냐면, 도큐는 원래 고토 것이고 케이큐의 경우는 [[도쿄메트로 긴자선#s-2|도쿄 지하철도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]] 도중 고토가 주식을 사재기해서 대주주에 올라 있었고, 오다큐는 발전 사업의 국유화 등 위기를 넘기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고토에게 회사가 인계되어서 고토 것이 되었다. [[사가미 철도]]는 신슈 철도의 합병으로 도큐와 쇼와 산업이 지분을 반반씩 나누게 되는 데 도큐가 나머지 절반도 인수하여 다이토큐의 일원이 된다. 이어서 [[1944년]]에는 전시 통제와 경영자 간의 합의에 의해 [[케이오 전철]]도 다이토큐에 흡수된다. 당시 다이토큐의 철도망은 도쿄와 요코하마뿐만 아니라 오다와라, 요코스카, 그리고 타마 지역 일대에 뻗어있었으며 버스 및 택시 사업도 병행했다. 종전 직후 독점금지법이 제정되었지만 다이토큐는 철도 회사라는 이유로 법을 피해갔고, 1948년까지는 다이토큐 체제로 굴러갔다. 그러나 옛 오다큐 사원 중심으로 전쟁 전으로 돌아가자는 여론이 일었고, 도큐도 거대한 노선망에 대한 전후 복구를 혼자 진행하기엔 벅차서 1948년에 도큐는 [[케이오 전철|케이오 테이토 전철]], [[오다큐 전철]], [[케이큐 전철|케이힌 급행전철]], [[사가미 철도]]로 분리되고, 다이토큐의 시대가 끝난다. 하지만 고토 케이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가미 철도에 '''다시 한 번 몹쓸 짓(?)을 벌이게 되는데'''... 이에 관한 이야기는 [[사가미 철도#s-2.3|사가미 철도]] 항목 참조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